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니스의 상인 (문단 편집) === 샤일록과 반유대주의 === >유대인은 눈이 없소? 유대인은 손도 없고, 오장육부도 육신도 없소? 감각도, 감정도, 격정도 없단 말이오? 기독교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흉기에도 다치지 않으며, 같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같은 방법으로 치료되지도 않으며, 똑같이 겨울에 추위를 느끼지 않고 여름에 더위를 느끼지 않는단 말이오? 우리 살점은 찔러도 피 흘리지 않소? 간질여도 웃지 않소? 독을 마셔도 죽지 않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지 말아야 하는 거요? >---- >- 샤일록 로맨틱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감미로운 장면이 풍부한 희극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증오심과 반유대 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극에서 샤일록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 인물로서 묘사되고 있는 점이 주목을 끈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면 당시에는 샤일록을 천인공노할 악당으로 보기 쉬우나 나이가 들어서 보면 [[커서 보면 불쌍한 캐릭터|제일 불쌍하게 보인다.]] 원작에서의 대접은 비참하기 그지없으며, 이 부분만 떼놓고 보면 희극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다. 결정적으로 침몰했다던 안토니오의 배는 멀쩡하게 돌아온다. 샤일록이 좀 지나치게 행동하기도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에 종사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아 토지 소유가 금지되는 등의 이유로 농업 같은 생계에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 평소에 안토니오라는 작자는 나를 매우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한다. 내가 그와 그의 주변인들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단지 내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다만 샤일록은 직업 때문에 돈을 밝히긴 한다. 그러나 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며 하는 행태를 보면 그가 특별히 악인이라 보기는 어렵다. 즉 좋게 말하면 직업정신에 투철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직업 때문에 돈에 환장한 노랭이 양반, 그렇다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고... 물론 너무 돈을 밝히는 것이 문제가 될 순 있으나 그게 주로 다뤄지는 것도 아니고...] 1. 그런데 그 작자가 나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 정당한 이유도 없이 신나게 모욕할땐 언제고 필요하니깐 사정하는 모양새가 더욱 아니꼽다[* 실제로 제1장 제1막에서 돈을 빌려주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할 때의 장면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 샤일록의 대사 가운데에는 '현관에서 들개를 걷어차듯 나한테 포악했던 당신이 "돈 빌려 주라" 라고 말하니 말씀입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떻겠소? "나으리께서는 지난 수요일에 저에게 침을 뱉으셨고. 또 어느 때에는 저를 들개라고 부르셨는데, 그 답례로 저는 나으리께 거금을 융통해 드리겠나이다"' 라는 것도 있다. 아마 모욕은 물론이고 폭행도 당한 듯 하다.]. 1. 나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담보를 걸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한 내로 갚지 못했을 경우에만 유효한 계약이므로 분명 나는 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었다. 갚지도 못하게 기한을 지극히 짧게 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토니오 본인이 호언장담한 기간에 맞춰주었으며 살인적인 이자를 붙인것은 더더욱 아니였다. 그리고 계약 불이행으로 생길 리스크에 대한 설명도 충실히 하는 등 법적으로 지킬 도리는 다 지켰다. 1. 배가 침몰했댄다! 골탕 좀 먹어봐라! [[너 고소]]. 재판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시민의 권리로서 신청한 소송이다. 억지로 연 것이 아니다.[* 대본을 읽어 보면 스치듯이 한 말인데 안토니오가 받아들인 것도 있다.] 1. 그런데 갑자기 한 판사가 나타나더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계약의 허점을 짚어내어 판결이 역전되었다.[* 정확히는 계약의 허점이 아니라 억지트집에 가깝다. 핏기없는 살이 존재하는가? 저 살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피는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정 안 되면 안 가져가면 된다. 계약에서는 피를 가져간다는 내용이 없는거지 흘리게하면 안 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즉, 피를 안토니오에게 다시 가져가라고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때도 당연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돌려줘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누가 돌려주는지 명시되어있지 않아서 샤일록이 안토니오보고 "너님이 가져가셈" 하면 끝이다. 이렇게 해도 계약서의 내용과도 포셔의 판결과도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그렇게 빌려준 돈을 눈 뜨고 떼인 것도 서러운데, 한술 더 떠서 내 재산의 반을 몰수당한다.[* 베니스인의 목숨을 노린 이방인은 그 재산을 몰수한다는 법 조항이 있기 때문인데, 안토니오도 동의한 계약이므로 좀 애매해진다. 물론 샤일록이 하필 담보로 살 1파운드를 내건걸 보면 그 자신은 그런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살도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 심장 근처 살인 게 의도성이 다분해보인다.] 더불어 가문 대대로 지켜 온 종교도 불합리한 이유로 바꾸란다. (재판에서 졌다고 종교를 바꾸라는 것도 법이 있었나?) 1. 그리고 침몰했다던 배는 다시 멀쩡히 돌아와서 안토니오 녀석은 희희낙락(...). 물론 조금이라도 갚아줄 리는 없다. 1. 금이야 옥이야 하던 내 딸은 아비가 이렇게 힘들 때 위로는 못 되어줄망정 그렇게 싫어하던 기독교도에게 넘어가 버린다...[* 물론 딸이 애초부터 아버지를 좀 싫어하긴 했고 그 기독교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타이밍 문제일 뿐 어차피 넘어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샤일록의 입장에서 적혀진 내용들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수준의 내용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갈등은 안토니오가 일방적으로 샤일록을 멸시한 게 아니고, 샤일록 또한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안토니오를 증오했기 때문에 이권 문제도 어느 정도 얽혀있는 문제였다. 또 개종은 강제로 요구한 게 아니라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선처해주는 대신 내건 조건이니 만약 종교가 중요하다면 재산 몰수 등의 처벌을 감내하고 선처를 거부한다면 그만이다.[* 샤일록으로서는 분개할 상황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제 그는 죄인이다. 그 당시 반유대주의적인 사고로 보면 쫓겨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재산을 뺏기는 것보다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개종하면 비록 욕을 바가지로 쳐먹는 건 같을지라도 명목상 이제는 '같은 예수님을 섬기는 형제' 가 되므로 유대인이라고 대놓고는 무시당하지 않게 된다. 유대인은 어디까지나 유대교를 믿어야 인정된다. 즉 샤일록이 베니스를 떠날 생각이 있지 않는 이상은 차라리 개종이 더 안전하다. 별 악행도 안 했는데도 경멸당했는데 이젠 (판결로는) 정말로 악행을 저질렀음이 드러났으니 그 뒤의 후폭풍은 알 만하다.] 요약하자면 원수로부터 (유대인이기 때문에) 정당치 못한 모욕과 멸시를 받고 살았다는 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살 1파운드 얘기 자체가 샤일록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소로,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샤일록이 완전히 억울한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포셔의 사기극을 제외하더라도 샤일록이 살해 의도가 있더란 것은 어차피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 설사 샤일록이 사기극을 눈치채고 재심을 요구해도 새 판사도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것에 포셔보다는 자비로운 판결을 내려줄지언정 그에 못지않은 중형을 내릴 것이다. 특히 당시와 오늘날의 시선이 달라진 건 [[대부업]]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시선에서도 [[대부업]]이 선한 직업으로 인식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업자가 자기 입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행위 자체는 정당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시대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흔히 중세 교회의 대부업 금지가 유명하지만, 대부업 금지는 고전기 헬라스 철학에서도 이미 나타나는 유서깊은 견해이다.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을 빌린 사람은 이자도 원금도 일절 갚지 않아도 됩니다. >---- >-[[플라톤]], 『법률』 742c, 김남두 등{{{-2 (정암학당)}}} 역주 >저리{{{-2 (低利)}}}로 이자 놀이를 하는 기술{{{-2 (obolostatikē)}}}[* (번역자 주석) 흔히는 영어권에서 'usury'{{{-2 (고리대금업)}}}로 번역한다. 당시 대부에 대한 이자율은 고리{{{-2 (高利)}}}로부터 평균적 이자율, 저리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리대금업'은 정의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W._L._Newman|뉴먼]]은 'the trade of a petty usurer'로 주석하고 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리뿐만 아니라 저리도 다 같이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끄러운 취득욕'{{{-2 (aischrokerdeia)}}}을 언급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적은 돈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2 (tokistai kata mikron epi pollō)}}} 고리대금업자를 언급하고 있다{{{-2 (1121b34)}}}. 어쨌거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으로 '돈'을 버는 것,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금융업'을 무겁게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나아가 오늘날에 유행하는 금융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에도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은 가장 정당하게{{{-2 (eulogōtata)}}} 미움을 받게 되는데, 그 획득{{{-2 (ktēsis)}}}이 돈이 고안된 바로 그 목적으로부터가 아니라 돈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돈은 교환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이자{{{-2 (tokos)}}}는 돈 자체의 양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서[* (번역자 주석) 이자를 뜻하는 'tokos'는 사람이나 동물의 자손, 새끼를 의미한다. 플라톤 『국가』 507a 참조.] 그것이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닮은 것은 정확하게는 자손이고, 이자는 돈으로부터 돈으로서[* (번역자 주석) 요컨대 그 관계가 '부모-자식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화를 획득하는 모든 방식 중에서, 이것은 실제로 가장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58b, 김재홍{{{-2 (정암학당)}}} 역주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업적 대부업을 금지했고, 플라톤은 빌린 돈의 원금까지 떼먹어도 된다고 가르쳤다. 중세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 그리스도교 교부, 유대교 랍비, 고전 헬라스 철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부업은 나쁘다고 가르치는 것이니, 당연히 대부업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을리가 만무했다. 세익스피어 시대에는 이런 가르침이 완화되었고, 이자를 받는 합법적 방법들은 있었으나, 채권자가 이득을 탐닉해선 안 된다{{{-2 ([[장 칼뱅]], ''De Usuris'', v.10)}}}거나, 대부 기관의 이득이 아니라 유지를 위해서만 이자를 받을 수 있다{{{-2 (교황 레오 10세 1515년 칙서, ''Inter multiplices'', 덴칭거 1442-1444)}}}거나 하는 식의 제한이 붙어있었다. 즉 세익스피어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샤일록이 대부업으로 이득에 탐닉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현대와의 차이점이다.[* 현대와 차이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최대 이자에 제한이 걸려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간에 과도한 이자는 이 시절이든 현재든 규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애시당초 과도한 이자 소득은 건전한 자본주의에 해를 끼친다는 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미국]] 학교에서 이 책에 대해 가르칠 때는 당대의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자인 샤일록 및 그 당시 유럽 상황에 주목한다. 미국 본토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있으며 이들이 경제와 정치 및 여러가지를 꽉 좌우하기에 그렇단 소리도 맞지만 그 이전에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인종차별로 온갖 험한 일들을 겪은 역사가 있는지라 이런 인종 문제에 민감해서 그런 것도 있다. 둘 다 정답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예전에 대부분은 이것을 '교훈용 동화'랍시고 샤일록을 더더욱 철저히 나쁜 녀석으로 각색하는 버전도 존재한다. 우선 안토니오와 샤일록을 생면부지의 인물로 만드는 것은 물론[* 따라서 샤일록은 생면부지의 안토니오에게 이런 과격한 조건을 쉽게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아예 시작부터 '샤일록 = 원래부터 이름난 개갞기'로 깔아놓고 시작하는 버전도 많다. 문제는 이런 버전들은 기이하게도 샤일록이 유대인이란 점은 꼭 짚고 넘어간다. 즉 주인공이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민족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서 샤일록의 악역성을 더 강화하려고 한 것 같으나, 자칫하면 특정 민족을 멸시하는 인종차별 풍습을 어린 아이들에게 당연하다는듯이 인식시켜 버릴수도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원본을 가지고 진지한 시점으로 접근한 작품도 아주 없진 않은데, [[계명대학교]] 출판사에서 교양과목 교재로 낸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에 더 주목한다. 대사마다 각주를 달아 샤일록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반유대주의]]를 깐다. 2010년대 기준에 나오는 책에서는 샤일록의 입장을 옹호하는쪽으로 약간 수정이 됐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당시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미움받아 추방되었기에 세익스피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고 샤일록은 당시 기독교권에서 떠돌던 반유대주의적 편견으로 집필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원작을 보면 샤일록이 고약한 면이 있다는 것이 명확하긴 하다.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죽이려고 하고, 돈을 몇 배를 준다고 해도 무조건 죽여야된다는 게 정상인의 반응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 역시 존재한다.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용서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분개하며 자신이 당한 차별을 늘어놓으며 "유대인은 눈이 없는가? 유대인은 손이 없는가?"로 이어지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of6yWNN-8|알 파치노의 낭독]] 즉, 셰익스피어 본인은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은연 중에 있으면서도 "이런 유대인이라도 이런 식으로 편견을 갖고 대하는건 너무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 물론 이것이 희극이란 점에서 샤일록이 철저히 망하는 것이 "해피엔딩"이므로 차별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발하는 작품이거나 한 건 전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